[소설]뱀프! -2-, -3-

2010. 8. 20. 21:29
오랜만에 쓰는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입니다. 다작을 하는 작가라서 그런지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은 꽤나 많이 읽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뱀프!]는 단편으로 끝나겠지... 라는 느낌이 너무 강했던 작품이어서 읽으면서도 상당히 놀랐었습니다.

뭐, 그래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었고, 다음에 벌릴 이야기들을 잘 설명해놓았다고 생각은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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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격적으로 개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굳이 2권과 3권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은 나리타 료우고의 작품을 여럿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표지가 이런 식으로 구성이되면 이야기가 연속으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2권과 3권의 이야기는 연속선상에 놓여져 있습니다.

우선, 2권은 열심히 일을 벌리는 스토리입니다. 1권에서 등장했던 인물들과 2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들을 벌려나가는 것이 2권의 주 스토리입니다.

나리타 료우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솔직히 2권은 정신없습니다. 그 개개의 인물들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특색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많은 인물들이 한번에 등장하기에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버거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뭐, 그런 독자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스토리는 열심히 달려나갑니다. 도대체 어떻게 끝을 보겠다는 거야? 라는 의문을 품은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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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권에서 열심히 일을 벌인 스토리는, 3권에서 어떻게든 마무리가 됩니다. 네, 신기하게도 말이지요.

여기에서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었는지 이야기하면, 읽고 싶던 사람들도 안 읽게 될 것 같으니, 그 이야기는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만 으음, 상당히 흥미로운 결말이기는 합니다. 적어도 4권이나 5권 즈음에서 어떤 식으로 다음 이야기가 전개될지는 확실히 알아차릴 수 있는 에필로그가 등장하기도 하니까요.

이번 [뱀프!]의 2권과 3권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복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두명의 '이터'가 한명의 뱀파이어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 그 주 스토리라인인데, 그것이 어쩌다보니까 신나게 꼬여버리고, 복잡하게 풀리는군요. 읽으면서 머리가 아프지는 않지만 읽고난 다음에는 머리가 아픈 스토리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 문득 든 생각입니다만, 이 소설의 제목은 [뱀프!]인데 가장 활약을 많이 한 것은 사실 '인간'이더군요. 그것도 순수한 '인간'입니다. 뱀파이어 같지 않은 뱀파이어(일반적인 인식으로 보면 그냥 괴물이라도 부를 만한 것들)이 많이 나오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활약을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어찌 보면 나리타 료우고 다른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네, '인간'이 없으면 결코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겠지요.

다음권에 대한 여운을 가득히 남기는 2권과 3권이기는 합니다만, 그 자체로도 완결을 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즐겨주세요.

-潾-

Posted by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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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나,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장편소설이 아닌 단편소설집입니다. 그것도 여러 작가들의 소설이 모여있는 뭐 제목에서 말하는대로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는 군요.

사실 이 감상을 적기까지 상당한 고민을 했습니다. 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게 좋을까, 아니면 여러가지 작품에 대해서 조금씩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 그것도 아니면 불만을 이야기 하는게 좋을까. 상당히 고민이 되더군요.

뭐, 결론은 아무래도 불만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요.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말하다시피 경계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 베스트컬렉션입니다. 베스트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좋은 작품들이 모여있으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쉽게도 답해줄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괜찮은 작품들은 모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시중에는 여러 베스트컬렉션들이 나와있으니 한 권 정도 더 플러스 된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죠.

그렇기에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경계문학입니다.

물론,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경계문학'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제가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요. 그렇기에 지금 제가 하고있는 말은 단순히 제목만을 보고 적어보는 제 생각입니다.

...음, 경계문학이 뭘까요? 아쉽게도 제가 책을 보면서 한자를 보지 못하였기에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경계'가 무엇인지 찾아본다면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 이정도가 적당하겠지요. 그리고 뒤에는 문학이 붙어있으니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에 있는 문학"이라는 뜻일까요?

...좋습니다. 그럼 그 한계를 넘으면 문학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네요? 그리고 이 경계문학에는 판타지, 무협, SF 이 세가지 장르의 소설들이 있었습니다. 그럼 말을 바꿔볼까요? 판타지와 무협과 SF는 한 발자국만 잘못 엇나가면 바로 문학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겠네요.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죠. 왜죠? 현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을 이야기해야만 그것이 문학인가요? 애당초 문학이란 언어를 매체로 사용하는 예술 및 그 작품이라는 것이 그 정의입니다. 물론, 그것이 일정수준에 달하야 한다는 것은 어떠한 장르에도 적용이 되겠지만요. 판타지도, 무협도, SF도 언어를 매체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왜 경계문학이죠? 그보다 어디하고의 경계인거지요?

...결국 책에 대한 감상보다는 용어에 대한 불만만을 말하고 말았네요. 글 자체는 재미있습니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도 많고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반전드라마라 불릴만한 것들도 있고요. 그리고 다들 경계에 서 있고 말이죠.

-潾-

ps. 아무래도 '경계문학'이라는 말은 어떻게도 좋아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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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남한산성 - 김훈

2010. 7. 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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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포스트에 이어서, 연속으로 김훈의 소설입니다.

[남한산성]은 김훈의 역사 읽기라고 생각되는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김훈이 역사를 읽어온 소설은 [현의 노래]와 [칼의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칼의 노래]를 처음으로 김훈의 소설에 대해 알았고, 바로 이어서 [현의 노래]를 읽어왔으니 사실상 앞에서 감상을 적은 [공무도하]를 제외하면 다들 역사와 조금씩은 관련이 있는 소설이었군요.

[칼의 노래]는 이순신, [현의 노래]가 우륵에 대해 쓴 소설이라고 한다면 [남한산성]은 앞의 것들과는 범주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딱히 누군가의 인생을 쓴 소설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럼에도 그 누군가를 표현해야 한다면, 민중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왕이 나오고 주전파, 주화파도 나오고 열심히 쳐들어온 청나라도 나옵니다. 병자호란이 배경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요.

단순히 많다. 라고 말하기 어려운 등장인물들이 다채롭게 나오지만 그럼에도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민중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담하게 당시를 김훈의 시선으로 묘사하면서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중이었으니까요.

김훈이 [남한산성]에서 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며,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떠받들기 위함도 아니었으니까요. 단지 그냥 있는 그대로, 그렇게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김훈의 생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다른 김훈의 역사소설인 [칼의 노래]나 [현의 노래]와 범주를 같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소설 다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시선, 생각하지 않았던 관점으로 이순신과, 우륵을 보고 있으니까요. [남한산성]은 그러한 시선을 이순신이나 우륵같은 개인이 아닌 병자호란과 남한산성이라는 사건과 지역으로 돌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공무도하]의 감상에서도 적었던 내용이지만 [남한산성]에서 재미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찾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재미보다는 민중의 삶과, 인생을 찾아보는 것을 더 추천하겠습니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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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공무도하 - 김훈

2010. 7. 3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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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훈의 소설을 읽은 다음에 감상을 쓸까말까 상당한 고민을 했었습니다. 뭐랄까, 자신이 감명깊게 읽지 못한 소설을 남에게 소개하고, 감상을 말한 다는 건, 상당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기도 했거니와, 사실 딱히 할말도 없었으니까요.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쓰기로 했으니 간단히 시작하고, 간단히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김훈의 [공무도하]는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제목정도는 알고 있을 공무도하가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굳이 '제목'을 따왔다고 말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내용상으로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느끼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읽은 감상으로만 말하는 것이니 아니라고 해도 별 수 없지만요.

위에서 말했다시피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굳이 [공무도하]라는 제목을 사용한 것은 그저 소설에서 물이 자주 나오며, 꽤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거라고 생각되는군요. 그렇다고 해서 물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지는 않지만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이니까요.

[공무도하]에는 여러 주인공들이 나오고, 여러 이야기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지요. 읽다보면 아, 이렇게 연결이 되기도 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야기들의 짜임새는 확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재미나, 감동을 원한다면 읽지 않는 것을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김훈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김훈의 소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니까요.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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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부터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이 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편지이다. 주인공은 여행을 다니고 있으며, 그 여행 동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맹인안내견을 제외하고는 없다. 그러한 주인공의 여행 중에 특이한 행동은 항상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여관방을 잡고, 여행 도중 만났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것이 주인공의 여행이며 매일 아침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편지가 도착한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답장은 도착하지 않는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간략하다면, 간략한 줄거리이다. 물론 영화의 예고편들이 그러하듯이 중요한 내용들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중요한 부분들과 반전들은 제외하였으니 읽어보면 뭐야, 이 거짓말쟁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편지, 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보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손글씨를 쓴다는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쓰고, 전하는 과정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으음, 솔직히 개인적으로 손글씨를 즐기지는 않는다.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생각의 전개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너무 강한게 손글씨이고, 덕분에 손글씨로 써야하는 많은 작업들, 그러니까 편지같은 것을 꺼리는 편이다. 소설이나 레포트를 써야 할때도 요즘은 대부분 컴퓨터를 사용하니 말이다. 사실, 편지도 그러한 번거로운 것을 대신하는 이메일이라는 것이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말하듯이 편지에는 편지만의 즐거움이 있으며 멋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작가도 편지라는 것을 등장시키지 않았나 싶다. 누구라도 그것의 즐거움과 멋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쓰지 못하는 편지. 그렇기에 우리는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지 않을까?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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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여인]은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제목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된 책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이기에도 하기에 이렇게 짧게 글을 올리게 되었다.

[플라스틱 여인]에서는 행복한 여인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행복이라는 것이 결국 개인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럼 행복한 여인이라는 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내가 행복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전에 뭐가 행복인건데? 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행복의 판단은 읽는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플라스틱 여인]의 여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길을 걸으려 하는 그런 여인들이 그려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한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끼칠 수 밖에 없는 많은 남성들 또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과연 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다만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연'은 남성이라 말할수도 있으며 여성이라 말할 수도 있는 입장이다는 점이 신경 쓰인다. 남성과 여성의 삶을 둘 다 살았으며 결국에는 그 어느것도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연'은 마지막 순간에는 행복해 진 것일까? 아니면 거기에서 또다른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여도 자신과 다른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또한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르다. 그런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상처입고 상처입히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세상이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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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적었던 소설 [슬로 굿바이]와 마찬가지로 [1파운드의 슬픔] 역시 연애 소설들의 단편집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
누군가의 결혼식
11월의 꽃망울
목소리를 찾아서
옛 남자친구
슬로우 걸
1파운드의 슬픔
데이트는 서점에서
가을 끝 무렵의 이주일
스타팅 오버

이렇게 총 10편의 단편 연애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소설마다 주인공들이 다른 직업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직업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적어도 많은 조사를 거치고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꽤나 많은 이시다 이라의 작품을 읽어봤지만 역시 이시다 이라에게 맞는 소설의 내용은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군요. 어차피 소설은 마찬가지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사실, 어떤 내용을 쓰고자 하는지는 꽤나 중요한 거니까요. 그렇기에 [블루타워]는 읽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시다 이라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한 느낌이어서 말이죠.

잠시 [1파운드의 슬픔]에서 이야기가 벗어났었는데 다시 돌아오자면, 이 단편소설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역시 '데이트는 서점에서'였네요. 개인적으로 꽤나 책을 좋아하는데 여자친구, 정확히는 연인과 서점에 갔었던 기억은 없는거 같네요. 연인이 아닌 여자친구와는 가본 기억이 상당하지만 역시 서점의 분위기는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그것이 대형서점이든, 길가에 존재하는 작은 서점이든 간에 말이죠. 나도 한번쯤 연인이 생긴다면 같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 바로 '데이트는 서점에서' 였습니다.

그와 정반대의 느낌을 받은 것이라면 역시 '슬로우 걸'이겠네요. 남자주인공의 성격부터 해서 뭔가 맞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입니다. 뭐랄까, 미묘한 소설이라는 감상이 전부이겠네요. 확실히 앞으로도 바에 가서 여자에게 작업을 걸 생각은 없으니까요.

[1파운드의 슬픔]이나 [슬로 굿바이] 둘다 단편 연애소설들의 모음집이지만 그 느낌은 매우 다릅니다. 한번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네요.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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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아마도 내일 감상을 적게 될 이시다 이라의 작품들은 모조리 단편이다. 2권의 단편집을 읽고 있으니 뭐, 별 수 없다.

[슬로 굿바이]는 연애소설들의 모음집이다.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천천히 사랑에 빠져드는 소설들이 모여있어야 하는데 왜 제목이 [슬로 굿바이]인지는 모르겠다. 빠져들겠다는건지, 아니면 끝을 보겠다는건지 미묘하게 구분이 가지 않는 제목이다.

울지 않아
15분
You look good to me
거짓 애인
진주 컵
꿈의 파수꾼
낭만 Holiday
Hartless
선線의 빛
슬로 굿바이

이렇게 10편의 단편들이 [슬로 굿바이]에는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소설이라면 '울지 않아'와 '거짓 애인'이다. '울지 않아'는 간단하게 말하면 친구의 애인이었던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며 '거짓 애인'은 말그대로 처음에는 친구들을 속이기 위해 사귀는 척 했던 두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두개의 소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입장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친구의 애인을 가로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울지 않아'의 주인공 처럼 친구의 애인이 쉽게 연락할 수 있을 법한 남자일 따름이며, '거짓 애인'의 주인공처럼 아직은 연애를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접근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슬로 굿바이]에는 그 두편을 제외하고도 매력적인 8편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각각의 짧은 연애소설들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며, 헤어지는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즐겁다는 듯이.

-潾-

ps. 개인적으로 책을 볼때에는 내용을 중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솔직히 나중에 감상을 적을 때 책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틀린 내용을 쓴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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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의 소설 감상 중에 또다시 끼어들어온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입니다. 예전 포스트에 적었던 것처럼 앞으로 감상에 들어갈 수 있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2권정도 남아 있군요. [Go]와 [영화처럼]이 그것인데 앞으로 쓸만한 소설이 없으면 감상을 적게 될 듯 싶습니다.

그럼 이번에 감상을 적을 [레벌루션 No.3]로 넘어가겠습니다. [레벌루션 No.3]는 단편소설들의 모음입니다. 여기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들은 다른 소설에도 열심히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요.

[레벌루션 No.3]에는 3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각각의 소설들은 동일한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꽤나 유쾌하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역시 표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벌루션 No.3'라고 할 수 있겠네요. 3편의 소설들 중 가장 제가 할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네요. 아아, 저에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이 슬픕니다. 사실 여고에 침입할 수 있는 남자의 용기는 꽤나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레벌루션 No.3'는 그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이루기 위한 고등학생들의 발악이지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그의 소설에는 죽음이 깊숙히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Go]에서도 마찬가지 이지요. 주인공들의 친구는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주인공은 거기에서 무언가를 느낍니다. 친구의 죽음이 행동의 촉매가 되기도 하지요. 아무래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결론으로 이야기하자면 [레벌루션 No.3]는 유쾌한 소설입니다. 물론, 제 기준입니다. 더군다나 [레벌루션 No.3]의 주인공들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유쾌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없는 유쾌한 행동을 보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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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감상을 적게 될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는 간단하게 말하면 연애소설이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의 주인공들은 대학생이다. 어제 감상을 적었던 [스무 살을 부탁해]와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1살이나 2살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를 주인공으로해서 쓰인 두 작품이지만 그 내용은 많이 다르다. 물론 취업소설과 연애소설의 차이도 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전적으로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에게 있다. 며칠전의 감상에서 적었던 것처럼 일반적인 연애소설이라면 해피엔딩을 기본으로 하며, 그 과정역시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는 정석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과 미오카의 사랑은 친구를 배반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죽음으로 끝을 맞이한다. 그러한 죽음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어야지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나 죽음으로도 우리를 갈라놓을수가 없어!의 분위기는 아니다. 단지, '미오카'가 죽을 병에 걸렸고, 그렇기에 죽을 따름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간단하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더군다나 '미오카'가 걸린 병이 굉장히 특이한, 소설 속에서 말한 내용을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1/백만 정도의 확률이라고 했었다. 굉장한 확률이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 수술을 했다는 설정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시다 이라의 소설에서는 아픈 인물이 무조건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주연급으로. [4teen]에서는 조로증에 걸린 14살의 아이가 나오고 [잠들지 않는 진주]에서는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여성이 나온다. 지금 이야기 하는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에서는 쓰는 것마저도 손이 꼬일 것 같은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미오카가 등장한다. 굉장히 소설적이다.

뭐, 그런 이시다 이라의 취향같은 부분은 내버려두고 다시 소설 이야기로 넘어가보겠다.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딱 13개월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주인공은 '미오카'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미오카'의 죽음으로 헤어진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난 너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솔직히 말해서 그런 남자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허세가 쩔어염'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지 않도록 소설을 읽었어야 하는 건데 조금 실수를 한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소설이니 남자 주인공의 허세와 그에 못지 않는 '미오카'의 허세를 보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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