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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부터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이 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편지이다. 주인공은 여행을 다니고 있으며, 그 여행 동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맹인안내견을 제외하고는 없다. 그러한 주인공의 여행 중에 특이한 행동은 항상 편지를 쓴다는 것이다. 여관방을 잡고, 여행 도중 만났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것이 주인공의 여행이며 매일 아침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편지가 도착한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답장은 도착하지 않는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간략하다면, 간략한 줄거리이다. 물론 영화의 예고편들이 그러하듯이 중요한 내용들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중요한 부분들과 반전들은 제외하였으니 읽어보면 뭐야, 이 거짓말쟁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편지, 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보자. 편지를 쓴다는 것은 손글씨를 쓴다는 것이다. 손으로 무언가를 쓰고, 전하는 과정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으음, 솔직히 개인적으로 손글씨를 즐기지는 않는다.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생각의 전개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너무 강한게 손글씨이고, 덕분에 손글씨로 써야하는 많은 작업들, 그러니까 편지같은 것을 꺼리는 편이다. 소설이나 레포트를 써야 할때도 요즘은 대부분 컴퓨터를 사용하니 말이다. 사실, 편지도 그러한 번거로운 것을 대신하는 이메일이라는 것이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게 말하듯이 편지에는 편지만의 즐거움이 있으며 멋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작가도 편지라는 것을 등장시키지 않았나 싶다. 누구라도 그것의 즐거움과 멋을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쓰지 못하는 편지. 그렇기에 우리는 편지를 기다리는 것이지 않을까?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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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여인]은 작가나 책에 대한 정보를 전혀 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제목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된 책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책이기에도 하기에 이렇게 짧게 글을 올리게 되었다.

[플라스틱 여인]에서는 행복한 여인은 나오지 않는다. 물론 행복이라는 것이 결국 개인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럼 행복한 여인이라는 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내가 행복한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전에 뭐가 행복인건데? 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행복의 판단은 읽는 사람들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본 [플라스틱 여인]의 여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 길을 걸으려 하는 그런 여인들이 그려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한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끼칠 수 밖에 없는 많은 남성들 또한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과연 작가가 그리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다만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을 '연'은 남성이라 말할수도 있으며 여성이라 말할 수도 있는 입장이다는 점이 신경 쓰인다. 남성과 여성의 삶을 둘 다 살았으며 결국에는 그 어느것도 진정한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연'은 마지막 순간에는 행복해 진 것일까? 아니면 거기에서 또다른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여도 자신과 다른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으며, 또한 모든 사람은 나와 다르다. 그런 다른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상처입고 상처입히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세상이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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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적었던 소설 [슬로 굿바이]와 마찬가지로 [1파운드의 슬픔] 역시 연애 소설들의 단편집입니다.

두 사람의 이름
누군가의 결혼식
11월의 꽃망울
목소리를 찾아서
옛 남자친구
슬로우 걸
1파운드의 슬픔
데이트는 서점에서
가을 끝 무렵의 이주일
스타팅 오버

이렇게 총 10편의 단편 연애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각각의 소설마다 주인공들이 다른 직업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직업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적어도 많은 조사를 거치고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꽤나 많은 이시다 이라의 작품을 읽어봤지만 역시 이시다 이라에게 맞는 소설의 내용은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되는군요. 어차피 소설은 마찬가지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사실, 어떤 내용을 쓰고자 하는지는 꽤나 중요한 거니까요. 그렇기에 [블루타워]는 읽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이시다 이라의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어색한 느낌이어서 말이죠.

잠시 [1파운드의 슬픔]에서 이야기가 벗어났었는데 다시 돌아오자면, 이 단편소설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역시 '데이트는 서점에서'였네요. 개인적으로 꽤나 책을 좋아하는데 여자친구, 정확히는 연인과 서점에 갔었던 기억은 없는거 같네요. 연인이 아닌 여자친구와는 가본 기억이 상당하지만 역시 서점의 분위기는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그것이 대형서점이든, 길가에 존재하는 작은 서점이든 간에 말이죠. 나도 한번쯤 연인이 생긴다면 같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 바로 '데이트는 서점에서' 였습니다.

그와 정반대의 느낌을 받은 것이라면 역시 '슬로우 걸'이겠네요. 남자주인공의 성격부터 해서 뭔가 맞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입니다. 뭐랄까, 미묘한 소설이라는 감상이 전부이겠네요. 확실히 앞으로도 바에 가서 여자에게 작업을 걸 생각은 없으니까요.

[1파운드의 슬픔]이나 [슬로 굿바이] 둘다 단편 연애소설들의 모음집이지만 그 느낌은 매우 다릅니다. 한번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 같네요.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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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아마도 내일 감상을 적게 될 이시다 이라의 작품들은 모조리 단편이다. 2권의 단편집을 읽고 있으니 뭐, 별 수 없다.

[슬로 굿바이]는 연애소설들의 모음집이다. 표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천천히 사랑에 빠져드는 소설들이 모여있어야 하는데 왜 제목이 [슬로 굿바이]인지는 모르겠다. 빠져들겠다는건지, 아니면 끝을 보겠다는건지 미묘하게 구분이 가지 않는 제목이다.

울지 않아
15분
You look good to me
거짓 애인
진주 컵
꿈의 파수꾼
낭만 Holiday
Hartless
선線의 빛
슬로 굿바이

이렇게 10편의 단편들이 [슬로 굿바이]에는 실려 있다. 이 중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소설이라면 '울지 않아'와 '거짓 애인'이다. '울지 않아'는 간단하게 말하면 친구의 애인이었던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며 '거짓 애인'은 말그대로 처음에는 친구들을 속이기 위해 사귀는 척 했던 두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두개의 소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입장에 빠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친구의 애인을 가로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울지 않아'의 주인공 처럼 친구의 애인이 쉽게 연락할 수 있을 법한 남자일 따름이며, '거짓 애인'의 주인공처럼 아직은 연애를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접근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슬로 굿바이]에는 그 두편을 제외하고도 매력적인 8편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각각의 짧은 연애소설들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며, 헤어지는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즐겁다는 듯이.

-潾-

ps. 개인적으로 책을 볼때에는 내용을 중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솔직히 나중에 감상을 적을 때 책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틀린 내용을 쓴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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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의 소설 감상 중에 또다시 끼어들어온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입니다. 예전 포스트에 적었던 것처럼 앞으로 감상에 들어갈 수 있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은 2권정도 남아 있군요. [Go]와 [영화처럼]이 그것인데 앞으로 쓸만한 소설이 없으면 감상을 적게 될 듯 싶습니다.

그럼 이번에 감상을 적을 [레벌루션 No.3]로 넘어가겠습니다. [레벌루션 No.3]는 단편소설들의 모음입니다. 여기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들은 다른 소설에도 열심히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지요.

[레벌루션 No.3]에는 3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각각의 소설들은 동일한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꽤나 유쾌하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라고 한다면 역시 표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레벌루션 No.3'라고 할 수 있겠네요. 3편의 소설들 중 가장 제가 할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것 같네요. 아아, 저에게 그런 용기가 없다는 것이 슬픕니다. 사실 여고에 침입할 수 있는 남자의 용기는 꽤나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바람직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레벌루션 No.3'는 그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이루기 위한 고등학생들의 발악이지요.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은 그의 소설에는 죽음이 깊숙히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Go]에서도 마찬가지 이지요. 주인공들의 친구는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주인공은 거기에서 무언가를 느낍니다. 친구의 죽음이 행동의 촉매가 되기도 하지요. 아무래도 가네시로 가즈키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만,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결론으로 이야기하자면 [레벌루션 No.3]는 유쾌한 소설입니다. 물론, 제 기준입니다. 더군다나 [레벌루션 No.3]의 주인공들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다른 소설들에서도 유쾌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없는 유쾌한 행동을 보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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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감상을 적게 될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는 간단하게 말하면 연애소설이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의 주인공들은 대학생이다. 어제 감상을 적었던 [스무 살을 부탁해]와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어차피 1살이나 2살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 또래를 주인공으로해서 쓰인 두 작품이지만 그 내용은 많이 다르다. 물론 취업소설과 연애소설의 차이도 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전적으로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에게 있다. 며칠전의 감상에서 적었던 것처럼 일반적인 연애소설이라면 해피엔딩을 기본으로 하며, 그 과정역시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는 정석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과 미오카의 사랑은 친구를 배반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죽음으로 끝을 맞이한다. 그러한 죽음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어야지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어!나 죽음으로도 우리를 갈라놓을수가 없어!의 분위기는 아니다. 단지, '미오카'가 죽을 병에 걸렸고, 그렇기에 죽을 따름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간단하기는 하지만 사실이다.

더군다나 '미오카'가 걸린 병이 굉장히 특이한, 소설 속에서 말한 내용을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1/백만 정도의 확률이라고 했었다. 굉장한 확률이다. 물론 그 나름대로의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렸을 때 수술을 했다는 설정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시다 이라의 소설에서는 아픈 인물이 무조건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도 주연급으로. [4teen]에서는 조로증에 걸린 14살의 아이가 나오고 [잠들지 않는 진주]에서는 갱년기 증상을 보이는 여성이 나온다. 지금 이야기 하는 [아름다운 13월의 미오카]에서는 쓰는 것마저도 손이 꼬일 것 같은 특이한 병을 앓고 있는 미오카가 등장한다. 굉장히 소설적이다.

뭐, 그런 이시다 이라의 취향같은 부분은 내버려두고 다시 소설 이야기로 넘어가보겠다.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딱 13개월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주인공은 '미오카'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미오카'의 죽음으로 헤어진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난 너를 평생 잊지 못한다고. 솔직히 말해서 그런 남자 주인공을 보고 있노라면, '허세가 쩔어염'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 기분이 들지 않도록 소설을 읽었어야 하는 건데 조금 실수를 한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소설이니 남자 주인공의 허세와 그에 못지 않는 '미오카'의 허세를 보고 싶다면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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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로 감상이 넘어가기는 했었지만, 다시 이시다 이라의 소설로 넘어왔습니다.

[스무 살을 부탁해]는 제목으로만 살피면 완벽한 청춘 연애 소설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소설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취업소설이라고 해야 겠다. 다만, 제대로 [스무 살을 부탁해]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제목에 대한 불만을 말하자면, 뭔가 이상하다. 이 소설이 취업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겠다. 뭐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 대학교 3학년으로 나온다는 것도 알겠다. 뭐 거기에서 더 잘 알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 3학년이면 스무 살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대체 왜 제목이 [스무 살을 부탁해]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20대를 부탁해'라는 종류라면 이해가기 쉬운데 말이다.

여튼, 제목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소설 내용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취업소설이다. 7명의 대학 3학년들이 취업동아리를 만들어서 언론계에 취업하기 위해 노력한다. 라는 것이 이 소설의 주 스토리 라인이다. 그런 큰 줄거리를 가지고 내용은 전개되고 있다. 취업의 압박감에 도중에 히키코모리가 되는 동아리 동지도 나오기도 하고 최종면접까지 갔었던 주인공이 실수로 떨어진다는 등 소설은 꽤나 스펙타클하게 전개된다.

그런 스펙타클에 합쳐서 소설은 제대로 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까지 보인다. 간단하게 말하면 열린 결말이라는 거겠지만 소설이라는 의미에서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소설의 열린 결말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취업소설에서 열린 결말은 찝찝하다. 결국 우리들에게 하고 싶을 일을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소설의 내용까지 그러한가? 라는 의문을 말하면 [스무 살을 부탁해]는 딱히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라는 식의 이상론을 주장하기에는 너무 현실적이다. 결정적으로 미묘하다는 거다.

[스무 살을 부탁해]라는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아이]의 아이들과 [잠들지 않는 진주]의 어른의 중간정도의 나이이다. 덕분에 이 내용마저 [잠들지 않는 진주]에 비하면 가볍다. 물론, 그런 식으로 구분하기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아름다운 아이]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무 살을 부탁해]는 20대의 주인공들에 적합한 내용과 전개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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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서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에 대해 감상평을 적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어떤 작품을 처음으로 적을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작품은 4작품 정도를 읽기는 했지만 현재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영화처럼], [레볼루션3], [GO] 이렇게 세작품이었기에 확률은 1/3 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 [GO]를 선택한 것은,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GO]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연애소설이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당당하게 이것이 연애소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것도 꽤나 긴 분량을 차지하면서까지 말이다. 왜 그런식의 전개를 보일 수 밖에 없는가하면 그것은 소설의 내용이나 주인공의 입장에 관련이 있다.

[GO]에서 주인공은 재일한국인이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의 문화를 즐기면서 살아왔지만 그는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대해서 모른다. 그저 외국인으로 분류를 당해서 살아가고 있을, 그런 일본인일 따름이다. 가네시로 가즈키, 작가 역시 재일한국인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이 생각하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 의식 등은 작가 자신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투영되어 있다. 그렇다고 한들, 그런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내가 그 생각이 올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다만, 틀리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는 있곘지만.

하지만, 실상 [GO]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재일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하는 문제는 뒤에 생각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GO]가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연애소설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주인공과 그가 사랑하고 그를 사랑하는 대상(그것이 여성이든 남성이든)간의 관계이다. [GO] 역시 그것을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두사람이었지만 주인공이 재일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둘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 만약 둘이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라고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주인공이 재일한국인인지 아닌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는 문제가 되어버린다.

이야기의 결론이 그렇게 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연애소설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애소설이라는 말을 자주 반복하기는 했지만, 만약 [GO]가 연애소설이 아니었다면 다른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이기에 재일한국인이라는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애소설이 아니었다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말이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GO]를 연애소설로 이야기했기에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야기 역시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확실히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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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연속으로 이시다 이라의 소설을 다루고 있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아이]와 [잠들지 않는 진주]에 대해서 감상을 적었는데 사실 [4teen]이 이시다 이라의 작품들 중 가장 처음으로 읽은 작품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종종 [4teen]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 감상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상관없겠다.

[4teen]에서 '4'는 두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주인공 4명을 뜻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들의 나이를 뜻하는 것이다. 결국 14살의 주인공 4명의 경험담이 소설 [4teen]인 것이다. [아름다운 아이]나 [잠들지 않는 진주]가 장편소설인 것에 비하여 [4teen]은 단편소설들의 집합이다.

[4teen]의 4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단편이 각각 진행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평범한 주인공은 '나'라는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다른 세명의 스토리가 희귀한 병이나, 불륜, 살인 등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것에 비해 '나'의 이야기는 평범한 연애이야기이다. 그러나 다른 세명의 스토리에 비해서 평범이라는 것이지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특이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살펴보면 [4teen]은 '나'라는 평범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은 다 14살이다.

14살 이라는 나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14살이라면 중 1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적당히 꿈을 바라보며 살기에 충분한 나이이며 미래라는 것은 아직 저 멀리에 있는, 그런 나이가 14살이다. 뭐 그렇다고 한들 15살이라는 나이가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16살 역시 마찬가지이다. [4teen]의 마지막 소설은 14살인 소년들이 15살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15살이 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라는 의문을 던져본다면 딱히 달라질 것은 없다는 답만이 나올 것이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은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중1과 중2의 간격을 성장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단지 약간의 업그레이드? 그정도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중1과 중2의 간격은.

[4teen]에서 4명의 주인공은 그들만의 공간을 창출하고, 유지하고, 소중히 여기고 있지만 우습게도 내가 27년동안 만나온 사람들보다 특이한 존재들의 구성이며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기에 소설인 것이겠지만.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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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역시 이시다 이라의 작품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적게 되었다. 책을 작가별로 읽게 되니 하루에 한권을 읽으면 한동안은 같은 작가의 책만 감상평을 적게 될 모양이다.

[잠들지 않는 진주]는 지금까지 읽었던 이시다 이라의 작품들과 분위기가 많아 달랐다. [아름다운 아이]나 [4teen]에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한다면 [잠들지 않는 진주]에서는 주인공의 연령이 대폭 상승한다. 20대 후반의 등장인물들을 어리다고 말하는 주인공이니 확실히 작품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연령이 대폭상승하면서 그와 더불어 소설내의 묘사 역시 달라졌다. 간단하게 성적인 것을 표현하자면 [4teen]에서는 묘사를 설렁설렁 한다거나 아니면 슬쩍 넘어가는 방식을 취한 것에 비해 [잠들지 않는 진주]에서는 분명하게 표현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주인공이 어른이고 [잠들지 않는 진주]가 결국에는 연애 소설인 만큼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위에서 말했던 것 처럼 [잠들지 않는 진주]는 연애소설이다. 연애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선남선녀가 손잡고 뛰어다니면서 우리는 행복해요- 라고 외치다가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겨서 헤어지기는 싫지만 우리는 어쩔수 없이 헤어집니다- 라는 분위기를 보이다가 결국에는 다시 결합하는 그런 스토리의 소설은 아니다. 40대 중반은 여자주인공과 20대 후반인 남자주인공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이 소설에는 나타나 있다. 이렇게 쓰고나니 위에서 말한 것과는 선남선녀가 아니라는 점만이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소설을 읽어보면 완벽하게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잠들지 않는 진주]는 개인적으로 이시다 이라의 생소한 면을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다음 작품을 더욱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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